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류수 전투 (문단 편집) == 기타 == * 전쟁 참여국은 고구려와 조위 둘뿐이지만 실제로는 [[부여]], [[선비족|선비]], [[낙랑군]], [[마한]], [[백제]] 등 다른 국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국제적인 전쟁이었다. * 건국 초부터 [[고구려]]와 관계가 껄끄러웠던 [[부여]]는 관구검에 의해 파견된 현도태수 [[왕기]]가 부여에 도착하자, 대사(大使) [[위거#s-4]](位居)가 대가(大加)를 통해 위군에 군량을 지원하도록 했다. 다만 선비나 오환이 고구려 원정에 동원된 것과 달리 부여군은 동원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위나라의 동연 토벌에 동원되었던 [[선비족]]은 이번에도 [[모용선비]]를 이끌던 [[모용목연]]([[모용외]]의 조부)이 병력을 동원해 협력하였다. 모용목연은 이 공으로 좌현왕(左賢王), 대도독 등에 임명되었다. [[모용선비]]와 중국 왕조 간의 우호관계는 281년 모용섭귀가 요서 창려군(昌黎郡)을 습격하면서 깨지며, 이후 모용목연의 손자 [[모용외]]가 선비대선우를 자칭하고 본격적으로 세력 확장을 시작했다. * 15년 후 위나라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침공했으나, [[중천왕]]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양맥 전투|양맥 계곡에서 위군을 대파]]하여 선왕의 참패를 되갚아 주는 데 성공했다. * 엄청나게 유명한 삼국시대, 그것도 조위가 최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에 배경으로 따지면 나름대로 삼국지에서도 유명한 네임드인 사마의나 손권, 관구검 같은 인물들과 관련되어 벌어진 대규모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삼국전투기를 제외하고는 삼국지를 주제로 하는 게임이나 만화, 소설 중 어느 곳에서도 관련 사건이나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다. 매체에서 비단 위촉오 간의 전투 뿐만이 아니라 당시 삼국이 행한 정벌도 수시로 언급되거나 관련 무장이 나오는 반면, 비류수 전투가 아니더라도 당시 정세의 핵심 인물이었던 [[동천왕]]이 언급되는 곳도 없다. 요동의 공손연을 중심으로 한 위-오-공손-고구려 외교관계가 꽤 국제적인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주로 해당 매체를 제작하는 국가가 일본인 데다가, 한국인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많다 보니 생략하고 넘어가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최근에 와서야 주목을 받지만 이전까지는 제갈량 사후의 이야기는 대충 축약해서 넘어갈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점도 크다. 게다가 한국은 일본이 한국의 고대사 관련으로 [[일제강점기]]에 깽판을 놓은 전적이 있어 일본의 동아시아 고대사 및 한국 고대사 해석에 상당히 민감한터라 [[삼국지 10]] 같은 삼국지 매체에서 [[낙랑군]] 관련으로도 민감하게 반응한 적이 있고[* 물론 이것은 한국측이 지나치게 억지로 대응한거고 이 껀에 한에서는 일본이 억울한게 맞다. [[낙랑군 평양설 식민사관설]] 참고.], 이후 일본 삼국지 매체에서 한국 고대사 관련한 소재를 내놓지 않는 것도 이런 원인이 없다고 보기 힘들다. 요동부터 한반도 북부, 부여 지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요동 공손씨 정권]] 영역을 확장해서 묘사하려는 시도가 이 때문에 이후 삼국지 매체들에선 시도되지 않고 있는데 굳이 고구려를, 그것도 고구려의 가장 큰 대패 중 하나를 굳이 일본에서 한국 눈치보며 다룰 이유도 없었을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